반복된 액면병합에 투자금 사실상 증발
동전주 퇴출 정책 속 소액주주 피해 논란
“기업은 살리고 주주는 버리는 구조 바뀌어야”
■ 앵커
한때 국내 수제맥주 대표 기업으로 주목받았던 제주맥주.
하지만 경영난이 장기화되면서 반복된 액면병합 끝에 일부 소액주주들이 사실상 투자금을 대부분 잃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사례가 단순한 한 기업의 실패가 아니라 국내 증시의 구조적 문제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 리포트
제주맥주는 상장 당시만 해도 국내 수제맥주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앞세워 많은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공모주 열풍 속에 주식을 매수한 개인투자자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후 실적 부진과 적자가 장기화되면서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주가는 지속적으로 하락했고 회사는 자본잠식과 상장 유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차례 액면병합을 실시했습니다.
액면병합은 여러 주식을 하나로 합쳐 주식 수를 줄이는 제도입니다.
이론적으로 기업 가치 자체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투자자 손실도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이미 주가가 크게 하락한 상태에서 반복적으로 액면병합이 진행되자 소액주주들의 보유 주식 수는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실제 일부 투자자들은 공모주 청약 이후 추가 매수를 통해 수백 주를 보유했지만 액면병합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보유 주식 수가 1주 미만으로 줄어들었고 결국 몇백 원 수준의 현금 정산만 받은 채 주주 명부에서 사라졌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수년 동안 기다렸는데 남은 것은 몇백 원뿐이었다"는 허탈감이 퍼지고 있습니다.
■ 액면병합 자체는 합법
전문가들은 액면병합 자체는 상법과 자본시장법이 허용하는 정상적인 제도라고 설명합니다.
주가가 지나치게 낮아질 경우 관리종목 지정이나 상장폐지 위험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액면병합이 아니라 기업의 수익성과 경쟁력이 장기간 악화됐음에도 불구하고 투자자 보호 장치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특히 반복적인 액면병합은 소액주주 입장에서 체감 손실을 극대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 제주맥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번 사례는 단순히 한 기업의 경영 실패로만 볼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투자자들이 가장 크게 제기하는 의문은 "이런 기업이 어떻게 상장될 수 있었느냐"는 점입니다.
상장 당시 성장성과 미래 가치를 인정받아 증시에 입성한 기업이 수년 만에 반복적인 적자와 주가 폭락, 액면병합을 거치며 사실상 소액주주들에게 막대한 손실을 안겼기 때문입니다.
물론 상장 심사 당시 기업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상장 이후 장기간 적자가 지속되고 기업 가치가 급격히 훼손되는 기업들에 대한 시장 감시와 투자자 보호 장치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 동전주 퇴출 정책의 그림자
최근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는 자본시장 선진화 정책의 일환으로 이른바 '동전주 퇴출'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일부 기업들이 액면병합을 통해 형식적으로 주가를 높이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액면병합은 주가를 높여 보이게 할 수는 있지만 기업의 실적이나 경쟁력을 개선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기업 가치가 달라진 것이 없음에도 보유 주식 수만 줄어드는 결과를 맞게 됩니다.
증권가에서는 "동전주 정리 정책이 자칫 액면병합 증가로 이어지면서 소액주주 피해를 확대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 좀비기업 논란
증권업계에서는 장기간 적자를 지속하면서 외부 자금 수혈에 의존하는 기업을 흔히 '좀비기업' 또는 '한계기업'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모든 적자 기업이 좀비기업은 아닙니다.
신기술 개발이나 미래 성장 투자를 위해 일시적으로 적자를 기록하는 기업도 많습니다.
하지만 수년째 적자가 반복되고, 유상증자와 전환사채 발행, 액면병합 등이 계속 이어지는 기업은 투자자들이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입니다.
■ 해설
이번 제주맥주 사례가 던지는 가장 큰 질문은 단순합니다.
기업을 살리는 제도는 많은데, 정작 투자자를 보호하는 제도는 충분한가 하는 점입니다.
상장 이후 기업 가치가 급격히 훼손됐음에도 투자자들은 사실상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습니다.
반면 기업은 액면병합과 각종 재무 기법을 통해 상장 지위를 유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시장에서는 "기업은 살아남았지만 주주는 사라졌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상장 심사 강화뿐 아니라 장기 부실기업에 대한 관리 체계 개선, 반복적인 주주가치 훼손 행위에 대한 감시 강화, 소액주주 보호 장치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 클로징
제주맥주 사례는 한 기업의 실패담이 아닙니다.
국내 자본시장이 투자자 보호라는 기본 원칙을 얼마나 충실히 지키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만드는 사건입니다.
기업의 생존도 중요하지만, 투자자의 신뢰는 더욱 중요합니다.
제2, 제3의 제주맥주가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 개선과 투자자 보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AI경기방송/김현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