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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엄마가 있다.
후두둑 후두둑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깜짝 놀라 문을 열었습니다.
일기예보에도 없던 빗방울들이 지면을 두드리며 쏟아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정오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인데....
아이들의 하굣길이 걱정스러워 부랴부랴 우산을 챙겨 들고 학교로 갔습니다.
교문 앞에는 벌써 많은 엄마들이 우산을 들고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물밀듯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 틈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은 채 아이들이
나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비 오는 날의 교문 밖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도 비가 오는 날이면 이렇게 엄마들이
우산을 들고 교문 앞에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형형색색의 우산을 들고
교문 앞을 서성이던 엄마들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 속에서 자신의 아이를
잘도 찾아냅니다. 아이를 찾은 엄마들은 아이의 이름을 부르고 엄마의 목소리를 들은
아이들은 반가이 엄마의 품으로 뛰어드는 풍경 역시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어릴 적 저는 비 오는 날이 싫었습니다. 저에게는 우산을 들고 기다리는 엄마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그 비를 다 맞으며 집으로 걸어와야 했습니다. 엄마가 없다
는 것 그것은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로 살아가는 것과 같았습니다.
성년이 되어 직장을 다니면서 저는 이 가슴속의 구멍을 메워보기 위해 숱한 방황의
날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으로도 그 헛헛함을 채울수는 없었습니다.
명절을 지내기 위해 직장 동료들이 휴가 며칠 전부터 준비를 하여 집에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릴 때면 제 가슴속의 구멍은 더 커져만 갔습니다. 저에게는 명절이 되어
찾아가도 반겨 맞아줄 엄마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태어나 살면서 가장 부러
웠던 것은 집이 아닌 가족이 있는 사람들 그 중에도 자녀를 기다리는 엄마가 있는
사람들이였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저의 선망의 대상이였습니다. 나보다 부족하고
모자란 것이 있을지라도 엄마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면서 저도 가족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를 아껴주는 남편과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 사이에서 저는 가슴속에 뚫려 있던
구멍이 다 메워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니였습니다. 친정이 없다는 것 그것은
언제 가더라도 나를 반겨줄 엄마가 없다는 것이였고 참으로 견디기 힘든 외로움이요
쓸쓸함이요 슬픔과 아픔 이였습니다. 분명 남편과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채울 수 없는 부족함 때문에 항상 저는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고 살았습니다.
그런 저에게 어느 날 따뜻한 환하다 못해 찬란하기까지 한 햇살이 비추었습니다.
저에게도 엄마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나를 손바닥에 새기시고 내 머리
카락까지도 헤아리고 계시는 엄마가 있다. 수많은 세월을 묵묵히 기다리시며 혹여
곁길로 행할까 염려하시며 걱정하시는 엄마가 있다. 제가 흘린 눈물보다 더 많이 나를
위해 울어주시고 내가 아파하는 것 보다 더 많이 아파하시며 나를 기다리신 엄마가
있다. 헛헛하며 찬바람만 불던 제 가슴속에 뜨거운 눈물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나도 엄마가 있다 내게도 엄마가 있다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와글와글 떠드는 소리에 눈을 들어 바라보니 아이들이 교문 밖으로 밀려 나옵니다.
수많은 아이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지만 내 아이는 단번에 찾을 수 있습니다.
아이의 이름을 부르니 반가운 얼굴로 엄마 하며 달려옵니다. 어른들 말씀에 엄마 눈에
자기 아이는 금테 둘러 보이겠지요. 저는 지금 너무나 행복합니다. 엄마가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행복을 주체할 길이 없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콧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저는 오늘도 준비를 합니다. 비 오는 날이면 엄마가 밖에서
기다릴 거라고 철석같이 믿는 아이들처럼 명절 때만 두 팔 벌려 맞아주실 엄마를
그리며 고향을 찾아가는 자녀들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를 합니다. 그런 마음들이
이토록 즐겁고 따뜻한지 이제아 알았습니다. 엄마 사랑합니다.
엄마가 되던 날
8월 10일이 예정일인데도 아무 증상이 나타나질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해가는 설렘과 초조함... 유도분만이라도 할까 하고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았
지만 아기가 작아서 좀 더 있더도 될 것 같다는 의사의 말에 그냥 돌아왔습니다.
나올 때가 되면 나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출산 준비 운동을 더욱 열심히 하기
시작했습니다. 운동을 너무 과격하게 한 탓이였을까... 8월 15일 아침 새벽까지 아무
이상이 없던 배가 살살 아파와 더 이상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급한 마음에 남편을
깨우고 병원에 전화를 했습니다. 일단 오셔서 진찰을 받아보세요. 간호사의 말에
전화를 끊고 미리 싸뒀던 짐 가방을 챙겨 일단 시어머니를 뵙고 가려고 시댁으로
향했습니다. 어머니 저 지금 병원에 가요 진통이 오는 것 같은데 병원에 가봐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밥 먹고 가라 밥을 먹어야 힘을 쓸 수 있다.
시어머니 말씀에 밥까지 먹고 병원에 도착하니 오후 1시였습니다. 왜 이제 오세요?
아까 오전에 전화 주신 분 맞죠? 네.. 지금은 어때요? 배 아프지 않으세요? 10분에 한
번씩 미세한 진통이 느껴져요. 근데 아프진 않고 그냥 기분 나쁘게 살살 아프기만 해요.
이제 진통이 시작되려나 보네요. 간호사의 말을 듣는 그때까지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담당 의사의 내진 결과 입원을 하라는 것이였습니다. 급작스레
두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의 두려움이란 거의 공포에 가까웠습니다.
남편이 입원 수속을 마치고 분만실로 향하는 발걸음은 더욱 무거웠습니다.
내 팔에는 무거운 링거가 매달리고 주사액이 한 방울씩 떨어질 때마다 고통이 더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엄마 도와주세요.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열 달 동안 늘 간절히 말했지만 그 시간만큼은 더욱더 간절하게 애원했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지 한 시간 동안은 그래도 참고 견딜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엄청난 고통이 나를 죽이는 것만 같았습니다. 내가 왜 무통분만을 해달라고 하지
않았는지 후회스러웠습니다. 무통분만해 주세요! 너무 아파요! 죽을 것만 같아요!
내가 소리를 지르니 의사 선생님이 지금 해봤자 너무 늦어서 소용이 없었습니다.
거의 다 열렸으니까 조금만 참으세요. 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순간 그 말에
고통이 더욱더 크게만 느껴졌습니다.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는 애를 낳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그렇게 고통스러워 죽을 것만 같은데도 문득문득 생각나는 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엄마 였습니다. 나에게 힘을 주시기 위함인지 깨달음을 주시기
위함인지 그때 내게 큰 자극이 된 태동검사 쿵닥 쿵닥 쿵닥 아기의 심장 박동 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 왔습니다. 내가 숨을 쉬지 않고 힘들어가면 아이의 심장 박동 횟수가
마구 떨어졌습니다. 심박수가 120~160회가 정상범위라고 하는데 70회 이하로 떨어진
심박수는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간호사의 목소리가 다급해졌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면 아기도 같이 숨을 쉬지 못해서 질식할 위험이 있어요 엄마 어서
호흡하세요 아빠가 옆에서 좀 도와주셔야겠어요. 내가 숨을 쉬지 않으면 아기가
위험해진다.... 눈물이 나왔습니다. 제발 숨을 토해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고통이 너무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숨을 쉬어야만 한다. 힘들어도 숨을 쉬자. 호흡을 일정하게
유지해야해. 아기를 위해서.... 출산준비를 하는 동안 연습했던 호흡법을 되새기며 나는
기를 쓰면서 숨을 쉬려고 노력했습니다. 내 아이를 위해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만
했습니다. 숨을 쉬고 싶은데 잘 쉬어지지가 않았습니다. 나도 모르게 주르르 눈물이
흘렀습니다. 옆에서 초초하게 내 손만 잡고 있던 남편이 거들었습니다. 조금만 참자.
힘내 여보! 숨 쉬자 해봐 어서 후~하 후~하...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으앙!
아이의 울을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순간 그토록 고통스럽던 시간들이 저만치
사라져만 갔습니다. 아이를 보자 지금까지의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이
전해졌습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고통의 눈물이 아닌 기쁨의 눈물이 끝없이 쏟아져
흘렀습니다. 엄마 감사합니다. 절로 말이 나왔습니다. 수고했다 많이 아팠지? 남편
역시 마음이 아팠는지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고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채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하나의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서 열 달을 공들였고 내 아이를 만나기 위하여 겪은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이 컸습니다. 무엇보다도 해산의 고통을 겪으신 엄마의
사랑을 더욱 가슴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엄마! 당신은 매일 수백 번 수천 번 죽을
만큼 아프시겠지요? 엄마 당신은 자녀 위한 아픔이 눈물이 마를 날이 없으시지요?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 보니 엄마의 심정이 어떤지 엄마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엄마에게 그저 사랑을 받기만 하면
되는 줄로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엄마가 되던 날 나는 비로소 엄마가 자녀를 사랑하기
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와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엄마가 되던
아이를 키우는 동안 아이가 아플 때는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차라리 내가 힘들었으면
하는 생각에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의 마음을 좀 더
깊이 깨닫게 되고 아이가 커갈수록 깨달음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엄마! 엄마의
사랑에 깨달음이 부족했던 저에게 아이를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해주심에 진정
감사를 드립니다. 늘 저에게 큰 사랑을 허락해주시고 깊은 사랑을 주시는 엄마에게
효孝의 도리를 다하는 자녀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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