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를 피해 집에서 문화예술을 즐겨보자

  • 입력 : 2020-02-07 18:07
  • 수정 : 2020-02-07 20:08
  • 20200207 (금) 4부 경향신문 이윤정 기자.mp3
∎ 영국 화가 윌리엄 터너의 삶을 각색한 ‘미스터 터너’
∎ 빈센트 반 고흐의 삶과 예술을 다룬 영화 ‘영원의 문 앞에서’
∎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의 삶과 예술을 그린 영화 '프리다'
∎ 미국 출신의 여성 화가 마가렛 킨의 삶을 다룬 영화 '빅 아이즈'

kfm999 mhz 경기방송 유연채의 시사공감

■프로그램: KFM 경기방송<유연채의 시사공감> FM 99.9
■방송일시: 2020년 02월 07일(금) (19:30~20:00)
■진 행: 유연채 앵커
■출 연: 경향신문 이윤정 기자

▷ 유연채 앵커 (이하 ‘유’) :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안방극장에서 즐길 수 있는 문화예술 영화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경향신문 이윤정 기자의 안내를 받아보겠습니다.

▶이 : 네. 안녕하세요 이윤정입니다.

▷ 유 : 오늘도 여행 대신 안방극장 1열에서 즐기는 문화예술 영화를 소개해준다고요.

▶이 : 네. 그렇습니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시아 전역으로 번져가는 모양새입니다. 아무래도 계속 감염자가 늘어나는 추세라 당분간은 야외 활동에 제약이 생길 것 같습니다. 졸업식, 입학식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도 취소되고 있는 만큼 집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찾고 계실텐데요. 이번주도 지난주에 이어 예술 영화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 유 : 네. 어떤 영화들이 있을까요.

▶이 : 가장 먼저 명화를 감상하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영화들을 준비했습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화가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의 삶을 각색한 영화 ‘미스터 터너’(2014)를 소개합니다. 그는 자연주의적 관점으로 풍경을 그리는 '고전적' 풍경화가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는데요. 원숙기를 맞은 그의 예술관은 변화를 맞았습니다. 자연주의적 성향에서 벗어나 풍경에도 낭만성을 입힌 것이었죠. ‘빛의 섬세한 색채변화’를 표현하는데 탁월한 터너.

영화 미스터 터너는 ‘예술가’ 터너보다도 ‘인간’ 터너에 초점을 맞췄는데요. 터너가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던 당시에도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었던 그의 성품과 사생활이 영화 속 에피소드들의 소재가 된 것이죠.

연출을 맡았던 마이크 레이프는 터너를 “급진적이고 혁명적이었던 위대한 화가”로 표현했습니다. 이에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결점 많은 한 개인과 세계를 정제했던 그만의 정신적인 방식 그리고 그 결과물인 작품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감을 영화가 조명할 만하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영화의 큰 매력점이라면 터너의 그림을 실제로 보는 듯한 장면들이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것일 텐데요. 터너의 그림들은 찬란히 흩뿌려지는 빛으로 가득차 있어, 보고 있노라면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게 되죠. 하지만 터너는 그 장면들에 이야기를 심어두었습니다. 단순한 아름다움보다도 더욱 중요한 이 세상의 이야기를요.

영화에서는 현재 보스턴 미술관에 있는 그림인 ‘노예선’(1840)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터너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이 그림을 사려는 듯 보이는 부유한 청년에게 그는 말하죠. 하지만 청년은 이 이야기에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이네요. 그는 오히려 그림의 채색이 어떠한지 등의 형식적인 작품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전염병으로 노예들은 죽는데, 질병 보험은 안 들어서 사망 보험금을 타려고 그들을 바다에 던져버린 거요.”

또 터너는 19세기 산업혁명의 여파로 변화하기 시작한 세상을 기록하기도 했는데요. 1838년 어느 날, 터너는 템스 강가로 산책을 나갔다가 트라팔가르해전에서 나폴레옹군을 물리친 유명한 전함 '테메레르'가 증기선에 '이끌려' 선박 해체장으로 가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이 그림을 스케치했고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전함 테메레르>입니다. 한때 전 유럽을 위협했던 나폴레옹군을 물리친 전함 테메레르가 이제는 ‘구식’의 길로 접어든 것일까요? 과거의 명성을 잃고 증기선에 끌려가는 모습이 사회의 변화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새로운 근대 문명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던 것이죠.

▷ 유 : 그림에 숨은 이야기까지 맛볼 수 있는 만큼 명화 애호가들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영화가 되겠네요. 다음으로 소개해줄 영화는요.

▶이 : 네. 영원의 문 앞에서 (At Eternity's Gate, 2018)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삶과 예술을 다룬 영화는 끊임없이 제작되어 왔는데요. 가장 최근 등장한 반 고흐에 관한 영화는 고흐의 한 그림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위에서 볼 수 있는 '울고 있는 노인 (영원의 문 앞에서, 1980)'이 그 주인공인데요. 고흐의 작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는 네덜란드 크롤러-뮐러 뮤지엄에서 만나볼 수 있는 이 작품은 고흐가 1882년 연필로 그렸다가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 유화로 완성한 것입니다. 건강이 악화되어 재활 치료를 받는 중 이었던 제작 당시의 배경을 떠올려보면, 이 그림이 고흐의 심정을 반영하고 있는 것임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감독이었던 줄리안 슈나벨은 "이 영화는 그림과 한 화가, 그리고 영원으로 치닫는 둘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이를 이야기해 주는 것은 바로 그 화가다. 영화는 그의 일생에서 내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공식적인 사실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내가 바라본 고흐다. 여러분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으면 하는, 그런 고흐다."라고 말하며 제작 의도를 밝혔습니다.

이 작품도 놀랄 만한 미장센과 '시'와 '드라마' 사이의 균형감을 통해 고흐의 천재성은 물론, 외롭고 고통스러웠던 그의 삶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감독 슈나벨은 반 고흐가 실제로 말년을 지낸 아를, 오베르쉬르 우아즈 등의 마을에서 촬영을 진행하며 현장감과 사실감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또 그의 방에는 노랗게 피어있는 '해바라기' 그림이 걸려있지만, 죽음에 다다른 시점에서 보여지는 해바라기 들판은 회색조로 말라있는 등 극명한 색조 대비의 미장센으로 그의 죽음을 암시하기도 했죠. 최근, '반 고흐가 눈질환을 앓았다' 혹은 '압생트라는 술로 인해 시력이 악화되었다'는 등 그의 시력에 관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는데요. 영화에서는 반 고흐에게 위로가 되어주었던 자연을 가끔씩 불규칙한 움직임으로 포착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그의 심각했던 시력 상태를 관람객들로 하여금 직접 느껴보도록 하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나는 가끔씩 생각을 멈추기 위해 그림을 그려요" 생전 사람들로부터 진짜 사랑이란 것을 받아보지 못한 그라서, 외로움의 감정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화가는 자연이 이렇게나 아름답다는 것을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존재하는 것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외로움의 감정을 잘 알았던 고흐는 그의 그림을 통해 사람들이 그들의 외로움을 깨닫고, 이로부터 위로받기를 바랐을지도 모릅니다.

▷ 유 : 반 고흐의 아름다운 그림들을 떠올릴 수 있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소개해줄 영화는요.

▶이 : 개봉한 지 조금 된 영화입니다. 2002년 영화인데요. 멕시코의 대표 화가 프리다 칼로의 삶과 예술을 그린 영화 '프리다'(2002)입니다. 독일어로 ‘평화’를 뜻하는 ‘프리드’로부터 비롯된 이름을 가졌지만, 그녀의 삶은 사실 그리 '평화'롭지만은 않았죠.

영화는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교통사고와 녹록지 않았던 결혼 생활 등의 사건을 따라 가면서 고통을 예술로 승화하는 프리다 칼로의 강인한 의지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예술과 정치, 로맨스가 영화 안에 동등하게 어우러진다는 점이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되기도 하죠.

이 영화는 독특한 미장센을 통해 매력을 발산하기도 합니다. 감독 줄리 테이무어는 프리다 칼로의 예술성을 스크린에 생생하게 구현하고자 했는데요. 마치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섞어놓은 듯,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라이브액션으로 재구성해 선보이기도 하고 색칠된 배경에 배우들의 모습이 겹쳐 등장하기도 하죠.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기법이나 디지털 효과를 적극 활용해 실제 인물들과 프리다 칼로의 그림 속 도상들을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정교하게 연결해 놓기도 했습니다. 초현실적인 그녀의 작풍처럼,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듯한 이런 장면들은 관람객의 마음을 사로잡죠.

▷ 유 : 프리다 칼로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 만큼 영화도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다음으로 소개해줄 영화는요.

▶이 : 빅 아이즈 (Big Eyes, 2014).

미국 출신의 여성 화가 마가렛 킨의 삶을 다룬 영화 '빅 아이즈'(2014)입니다. 영화의 제목처럼 큰 눈과, 다소 마른 몸을 가진 아이, 여성 그리고 동물들이 작품의 주된 대상이었는데요. 종이뿐만이 아니라 접시나 컵 등에도 작품을 복사·제작하여 저렴한 가격에 판매해 상업적인 성공도 이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그녀의 남편 월터가 마가렛이 그린 ‘빅 아이즈’ 시리즈를 미술계에 팔기 시작하면서 이뤄낸 것이었는데요. 이후 ‘빅 아이즈’ 시리즈는 전 세계를 뒤흔드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게 되지만, 월터가 ‘빅 아이즈’의 진짜 화가 행세를 해 정작 마가렛은 숨어서 그림을 그려야만 하는 신세가 되어버립니다. 마가렛은 월터의 거짓된 삶과 욕심을 참지 못하고 딸과 함께 하와이로 떠나게 되죠. 그녀가 이혼을 요구하는데도 '그림을 더 내놓으라'라며 끈질기게 굴었던 월터에 그녀는 진실을 밝힐 것을 결심하게 됩니다.

실제로 1970년, 마가렛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자신이 그림들의 진짜 창작자임을 밝힙니다. 이후 그림에 대한 창작권을 두고 열린 재판에서, 누가 그림의 진짜 주인인지 가리기 위해 작품 시연을 실시했는데요. 월터는 어깨 부상을 핑계로 이를 거부했지만, 마가렛은 53분 만에 그림을 그려내며 스스로를 입증해냅니다. 결국 4백만 달러의 정신적 손해배상금을 얻어 내죠.

정의가 승리했음을 느낍니다. 사백만 달러가 눈앞에 있는 게 아니더라도, 이 결과는 매우 가치 있습니다.

  • 마가렛 킨, 허핑턴 포스트 인터뷰 중 (2013)

▷ 유 :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해줄 영화는요.

▶이 :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재벌 3세 유괴 사건이 영화로 제작됐습니다.

1973년 석유 사업으로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J. 폴 게티의 손자가 유괴된 사건을 다룬 영화 <올 더 머니>인데요. 1892년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태어난 게티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석유사업을 시작해 중동 지역으로 진출하며 막대한 부를 쌓습니다. 5번의 결혼, 14명의 손주, 40억 달러나 되는 기업자산이 있었지만 그가 가장 아끼던 건 예술품이었던 듯 보입니다.

미술품 수집에만 수억 달러를 썼고, 1953년 로스앤젤레스 근처에 게티미술관을 개관하기도 했죠. 1973년 게티 가문에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바로 16살의 폴 게티 3세가 이탈리아 로마에서 마피아에 납치된 겁니다.

유괴범이 요구한 몸값은 1700만 달러(186억 원). 전 세계가 게티 3세의 역대급 몸값 협상에 주목하는 가운데 할아버지 폴 게티는 단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게티는 "나에게는 그 녀석 말고도 손주가 14명 있는데 납치범에게 돈을 주면 그런 일이 또 일어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돈을 지키려는 게티와 자식을 지키려는 며느리 게일의 긴장감은 극에 달합니다. 이미 게티 2세와 이혼한 상태인 게일은 이탈리아 언론을 이용해 할아버지를 압박하죠. 협상이 지지부진해지면서 게티 3세는 5개월이나 납치범에게 끌려다니게 됩니다. 그러는 동안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등장하죠. 그렇게 손주의 몸값을 낼 수 없다고 버티던 게티가 값비싼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그림은 덜컥 사들이는 장면입니다.

“사람이 부자가 되면 자유라는 문제를 해결해야 해. 무엇이든 할 수 있거든. 심연이 확 열리는 거야. 나도 그 심연을 봤어. 그 심연이 사람을 망치고 결혼을 망치고 무엇보다 아이들을 망치는 걸. 부자가 되는 것보다 부자로 사는 게 훨씬 어려워.” 지지부진한 협상에 납치범들은 게티 3세의 오른쪽 귀를 잘라 편지와 함게 언론사에 보냅니다. 납치범은 몸값을 300만 달러로 낮췄고, 폴 게티는 300만 달러가 아닌 세액 공제 가능 금액인 220만 달러를 납치범에게 건넵니다. 그리고 나머지 80만 달러는 아들에게 4% 이자를 받는 조건으로 빌려주죠.

몸값을 지불한 뒤에야 폴 게티 3세는 5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납치 사건의 충격으로 술, 마약에 빠져들었습니다. 또 그는 시력을 잃고 반신마비를 겪으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어머니 게일은 평생 아픈 아들을 보살펴야 했죠. 그렇게 암울한 여생을 보낸 게티는 2011년 54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그렇다면 게티는 어떻게 됐을까요. 영화에서 게티는 손주가 풀려나던 날 심장마비로 목숨을 잃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3년을 더 살았습니다.

영화에서 그는 죽기 직전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도 들을 수 없는 방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죠. 게티는 실제로 영국에 있는 방 72개짜리 저택에서 아끼는 셰퍼드 개와 단둘이 있다가 죽음을 맞았다고 합니다.

이후 미성년인 게티 3세가 상속자가 되고 대리인의 자격을 얻은 게일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결정하죠. 게티 가문은 게티가 남긴 캘리포니아의 게티 센터와 스톡이미지 회사 게티이미지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 유 : 오늘은 여기까지 듣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경향신문 이윤정 기자와 이야기 나눴습니다.

첨부
2020.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