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M스페셜] "한반도의 봄 - 부치지 못한 편지" /KFM경기방송

  • 입력 : 2018-09-13 18:23
  • 수정 : 2018-09-17 07:35
지난 8월 열린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온통 울음바다였습니다. 현재 살아계신 이산가족 수는 5만 7천여명. 이중 매해 3천명이 넘는 분들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고 계시다고 하는데요. 경기방송 21주년 특별기획, KFM스페셜.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 그 애달픈 이야기함께합니다

■방송일시: 2018년 9월 6일(목)
■방송시간: 3부 저녁 7:00 ~
■진 행: 소영선 프로듀서
■기획,취재 : 오인환 보도국 기자 / 장주영 프로듀서

20180913(목) kfm스페셜 부치지 못한 편지

(인터뷰1)"남아있는 동생들에게 한 마디 하겠다. 제발 통일될 때까지만 살아만다오. 내가 고향을 떠나와 고향 소식을 듣지 못해 안타깝구나", "우리가 이별한지 65년이 흘렀지만 나는 꼭 믿고 있다. 우리가 다시 만날 그날을 위해서 나는 살아간다.", "빨리 남과 북이 통일이 되어 죽기전에 만나보고 싶구나. 건강하게 잘 지내길 빈다 남측에서...","죽을때가 되니까 더 보고싶다. 사는게 사는것이 아니다.", "살아주길 바란다 할말은 많지만 이만 줄인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수취인불명 : 우편물을 받는 사람의 주소가 부정확하거나 잘못된 주소지로 인해 반송된 편지

이산가족 대부분은 가족의 생사 조차 알지 못합니다.

이번 달 기준 이산가족의 수는 5만 6862명.

68년이라는 세월 동안 단 한 통의 편지 조차 전달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운 아버지, 어머니의 얼굴은 이제 희미해져 갑니다,

(인터뷰2)"서로 만나게 해줄 것 같습니다. 우리 죽기 전에 한번 만나봐야죠.","아이고... 보고 싶은 것 환장을 하고... 내가 밑에... 가슴에 피 덩어리가 이만한게 있어요.","이렇게 나마 영상편지로 이야기 하고 있다. 앞으로 건강하게 잘있어라..."

정부는 지난 2005년부터 이산가족의 이야기를 영상 편지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제작한 영상편지는 약 2만 천 여 건.

하지만 단 20편 만을 시범적으로 교환했을 뿐 나머지 편지에는 먼지만이 쌓였습니다.

언제쯤 이 편지는 그리운 가족들에게 전달될 수 있을까요?

채 전하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

경기방송 21주년 특별기획 '한반도의 봄' 2부 '부치지 못한 편지' 편이 잠시 뒤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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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열린 남북 정상 회담.

6·15 남북 공동선언으로 지금의 이산가족 상봉에 기본틀이 마련됩니다.

(인서트3)"안정환 슛 들어갔습니다. 경기 끝났습니다. 안정환, 안정환 해냈어요."

2002년 한일 월드컵의 환희도 잠시 그 해 6월 29일 발생한 '제2연평해전'.

이 사건으로 우리 해군 6명이 전사했고 모두 19명의 장병이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후 남북 관계는 급속히 냉각되면서 크고 작은 사건이 줄을 이었습니다.

이산가족 문제를 논의할 수 도 없을 만큼 남북은 더욱 더 멀어지기에 이릅니다.

(인터뷰4)"핫라인도 없어졌어요. 그게 어떻게 봤을때는 상징적으로 연결된 이산가족을 위한 위로의 선... 사랑의 선이었는데... 그것마저 불통이 되어버리니까... 안타까웠죠."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는 상봉 재개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립니다.

이때 고려된 것이 바로 다변화 정책의 구상이었죠.

실무진 들은 이산가족의 교류를 위한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게 됩니다.

당시 대한적십자사 남북교류팀에서 실무를 맡던 허정구씨는 당시 복잡했던 지난 소회를 밝히고 있습니다.

(인터뷰5) "이산가족이 돌아가시면 기본적인 데이터가 들어가있기는 하지만 북에 전달할 실제 사연들은 없잖아요. 이산가족의 한도 어떻게 보면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둘 수 있지 않겠느냐 생각했죠."

매년 3~4천명의 이산가족이 세상을 등지는 현실에서...

그들의 애달픈 이야기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때 구상된 것이 바로 이산가족 영상편지 사업이었습니다,

약 20분 분량의 편지에는 한 맺힌 이산가족의 마지막 바람과...

분단으로 고통받아야만했던 우리의 슬픈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인터뷰6) "그것을 촬영을 하려고 가보면 몇날 몇일을 준비하세요. 옛날의 기억을 하나라도 더 하려고 편지도 자필로 쓰시고 우시기도 하고... 상당히 마음이 아프죠. 그러니까 시간이 없는거에요."

2005년 첫 해에 제작된 영상편지는 4천여편.

2006년 4월, 제18차 남북장관급 회담에서 우리는 이 영상 편지의 데모 테이프를 북에 전달하게 됩니다.

그 후 2년이 지나 2008년에야 남북이산가족 영상편지 교환에 관한 합의서가 판문점에 전달됩니다.

비로소 남과 북은 이산가족의 영상편지 20편을 첫 교환하는 결실을 맺게 됩니다.

(인터뷰7) "교환에 대한 거는 먼저 이야기가 된 겁니다. 제작 된 것도 있고 하니까... 교환하자는 것을 부담없이... 돌아가시는 것은 어쩔수 없다... 가지고 있는 사진이라도 보구서 이분이 내 어르신이고 형님이고... 벌써 10년 전의 일이 됐으니까..."

당시 통일부 장관이었던 이재정 현 경기도교육감은 당시 남북 관계에 대한 어려움을 회상했습니다.

(인터뷰8) "실제로 2006년 10월 9일 북한에서 1차 핵실험을 하면서 남북관계는 완전히 단절이 됐거든요. 2006년 약속했던 쌀 차관 50만톤도 이행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 관계는 완전히 단절된 상태였죠. 거기에다가 미국 부시 대통령이 정말 악의 축으로 몰아치면서 교체 전제아래 선제 공격 정책을 강화했기 때문에... 실제 남북 관계는 최악의 상황이었다고 판단합니다."

그는 영상편지 사업의 중요성도 강조했습니다.

과연 우리가 이 시기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말하고 있는데요.

바로 인도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시급한 과제.

적어도 이제부터라도 이산가족들의 편지가 신속히 북에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터뷰9) "영상편지 다시 복원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구요. 이미 합의된 거기 때문에 그야말로 UN제재와는 상관없이 북과 협상을 해나가고... 아까 만들어 놓은 영상편지가 갈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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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등록된 남북 이산가족 총 수는 13만 1531명.

그 중 현재까지 살아있는 이산가족 수는 5만 6,862명

절반 이상이 이미 한을 풀지 못하고 세상을 등졌습니다.

그리고 그 아픔은 대를 이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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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의정부시의 52살... 김응록씨.

그의 아버지 김정현씨는 아내와 아들, 형님 등 가족 모두를 전쟁과 함께 잃었습니다.

(인터뷰10) "설이나 추석때... 다같이 모이는 게 가족인데... 형제들을 많이 생각하시고 TV를 행사에서 하면 항시 보시고... 자신의 차례가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하시면서 기다리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며느리 정은순씨도 막연했던 이산가족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습니다.

(인터뷰11) "책에서만 봤던 이야기를 진짜 겪으신거죠. 형제들 이야기를 하시면서 눈시울이 붉어지시기도 했구요. 저희 세대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불러서 알고는 있었지만 마음으로 다가오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아버님을 뵈면서 한편으로는 내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부모와 떨어지면 어떤 마음일까 생각해보면서 하루빨리 만나셨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90이 넘는 나이가 된 아버지.

그는 오늘도 가족을 그리워 합니다.

(인터뷰12) "사랑하는 아들 응걸이 응룡아 너희들과 헤어진지 어느덧 65년이 되었구나. 포기하지 않고 인내심으로 학수고대한바... 마침내 천금같은 오늘이 왔구나. 물과 같이 바람 같이 살다가 갈까 하니 내 걱정 하지 말고 너희들이나 앞날을 건강히 지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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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담양에 사는 최원갑씨도 어느덧 90이 되었습니다.

며느리와 손녀가 한 자리에 모인 자리.

영상편지 내내...

철이 들어버린 어린 손녀는 할아버지를 말없이 안아줍니다.

(인터뷰13) "할아버지가 엄마, 아빠에게 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작은할아버지랑 큰고모가 많이 그리워요. 제가 초등학생이었을때... 할아버지와 통일전망대를 가서 할아버지가 눈물이 그렁그렁 하시면서 북측을 바라보셨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정말 좋은 소식이 들려서 작은할아버지와 덕실이 큰고모 보고 싶습니다. 그립습니다."

형제를 잃은 할아버지의 눈물.

보고 싶은 형제들....

(인터뷰14) "원녕아, 원경아, 덕실아 덕규아 덕근아 다 보고 싶다. 살아있는지 모르지만 소식은 알고 싶다. 꼭 좋은날이 오면 만나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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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남해군에 사는 90살 백의화씨도 이산가족입니다.

백 씨는 전쟁 중에 홀로 남겨지게 되었는데요..

당시 할아버지에게는 아내와 태어난지 15일 밖에 되지 않은 아들이 있었습니다.

(인터뷰15) "결혼한지 얼마 안되서 15일만에 이쪽으로 넘어오고 그냥 헤어져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도 모르고 만약 아들이 살았으면 환갑인데... 보고 싶구나..."

이를 바라보는 자식들은 오늘도 말없이 아버지의 손을 잡았습니다.

(인터뷰16) "저는 그렇습니다. 15일만에 백춘식이라는 자식을 두고... 저도 부모가 되고 출가를 시킬 나이지만 진짜 눈을 감을때까지 잊을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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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년이라는 세월은 22살의 청년을 90살의 할아버지로 13살의 소녀를 81살의 할머니로 만들었습니다.

병석에서 남긴 그들의 마지막 유언.

그들의 생전 모습은 이제 이 영상편지에만 남아있습니다.

(인터뷰17) "광현아 보고싶다가 눈물바다로 세월로 보낸지 30년을 기다렸고 또 30년을 기다리다 보니까 60년이 넘었는데... "

살아 생전 남긴 북에 있는 가족들의 이름과 주소.

아버지의 편지를 딸은 눈물로 조용히 읽어내려 가봅니다.

(인터뷰18) "저는 아버지의 맏딸 이름은 최미희입니다. 오랜세월 자라면서 아버지의 울음소리를 듣고 자란 터라 무슨 말을 전할까 설레이네요. 아버지 살아 생전에 만날 것을 꼭 약속해봅니다."

제주에 살던 김천근씨도 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북에 두고 온 아내와 아들.

3일만 있으면 만날 수 있다는 기대는 68년의 한이 되었습니다.

그가 남긴 마지막 편지.

(인터뷰19) "첫째 영활와 영훈아 너희들의 아버지란다. 잠시만 헤어질 줄 알았는데... 어느새 이렇게 많은 세월이 흘러가버렸구나 정말 많이 보고 싶었다. 너희 어머니는 잘 지내고 계신지 궁금하구나 아니 내가 너희 어머니에게 직접 이야기를 해야겠다. 내 기억 속 여인으로 당신이 정말 보고 싶고 미안하오 내 생전에 당신들을 본다면 여한이 없겠소... 당신과 함께 한 시간이 나에게는 정말 행복한 나날이었소 그날을 기약하며 이만 줄일까 하오. 부디 건강히 잘 지내시오... 정말 정말 보고 싶다. 안녕." "영활아 영훈아 정말 보고 싶다."

남아있는 이산가족의 열에 여덟은 70대 이상의 노인입니다.

고령인 그들 대부분은 건강조차 온전하지 못합니다.

(인터뷰20) "좀 빨리 이산가족 상봉 좀 하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제 바람은 그것 밖에 없어요. 거기 가보기 전에는 눈도 못감는다고 하시니까..."."내가 셋째 형이다 근데 건강을 지켜서... 항상 내가 보고 싶어서 잠을 못잔다... 제발 대면이라도 해보자","우리가 다시 만날 그날을 위해서 항상 웃는 얼굴로 지내자 내 동생 덕수야 보고 싶다 만날때까지 잘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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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 조성우 ‘두 연인의 갈등’)

2018년 유례없는 따뜻한 바람이 한반도에 불어왔습니다.

상생과 평화.

하지만 우리가 장밋빛 청사진을 내놓는 사이

우리는 참혹했던 이산가족의 현실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이산가족들은 한 통의 편지 조차 전달하지 못한채 이 순간 세상과 작별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5년 이후 정부가 제작한 영상편지는 모두 2만 천 건.

간절한 소망을 담은 이 편지는 언제쯤 주인을 만날 수 있을까요?

(인터뷰21) "저희 어머님께서 103살이십니다. 너무 연로하시다 보니까 돌아가실 것 같다는 생각에 너무 제가 옆에서 보면서 안타깝고 힘이 듭니다. 정부에서 이와 관련해서 노력을 해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얼굴이라도 한번만 뵙고 돌아가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그 얼마나 한이 맺히고 절박하시겠습니다. 형님도 80이 넘으셨는데... 지금 살아계시는지 참 안타깝고 답답합니다.", "세월이 참 좋아지니까... 만나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살아계시는지 돌아가셨는지 몰라도... 내가 눈물이 난다. 나이가 많으니까... 궁금하기도 하고 알고 싶고... 그래서 이렇게 해서 찾을수가 있겠습니까?"

하루라도 빨리 정부가 이산가족의 영상편지 교환 사업을 재개하길 바랍니다.

(인터뷰22)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 저 하늘 저 산 아래... 아득한 천리...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오는 멍 꿈에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경기방송 21주년 특별기획 한반도의 봄 2부 – 부치지 못한 편지 지금까지 기획 오인환 연출 장주영 저는 소영선 이었습니다.

2018.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