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의 아픔 느낄 수 있는 '고종의 길'...8월 한 달간 개방된다

  • 입력 : 2018-08-17 19:53
  • 수정 : 2018-08-18 10:11
  • 20180817(금) 4부 주말어디갈까 - 이윤정 기자.mp3
얼마 전 광복절이었죠. 이번 주말에는 열대야 현상도 줄어든 만큼 역사와 재미 모두를 느낄 수 있는 여행 어떠신가요? 최근 덕수궁에서 '고종의 길'을 복원해 시민들에게 개방중이라고 하는데요. 4부에서 이윤정 경향신문 기자에게 안내 받아보겠습니다.

■방송일시: 2018년 8월 17일(금)
■방송시간: 4부 저녁 7:40 ~ 50
■진 행: 소영선 프로듀서
■출 연: 이윤정 경향신문 기자

0817(주말)

▷소영선 프로듀서(이하‘소’) : 날이 드디어, 조금 살 만해졌습니다. 에어컨 안 틀어도 잘 수 있는 밤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든 생각인데 이제 살짝 ‘걷기 여행’도 도전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오늘은 역사를 품어 있는 길로 떠나볼까 합니다. 경향신문 이윤정 기자에게 안내를 받아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윤정 경향신문 기자 (이하‘이’) : 안녕하세요 이윤정입니다.

▷소 : 이윤정 기자님은 걷기 여행 좋아하세요?

▶이 : 네 저도 걷기를 참 좋아하는데요. 해외여행 가도 웬만하면 걸어서 가보려고 해요. 런던에서 1시간 거리인데 걸어간 적도 참 많았어요. 재밌더라고요. 낯선 곳의 문화를 읽을 수 있는 방법 같아서. 요즘 너무 더워서 못 했는데 이제는 날씨가 풀려서 그래도 될 것 같아요.

▷소 : 오늘은 아관파천의 비밀을 품은 길을 소개해주신다고요.

▶이 : 네. 제가 8월 들어 소개를 해드리고 싶은 곳이었는데. 너무 더워서 못하고 있다가 드디어 소개를 해드리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어렸을 때는 대한제국에 대한 교육을 못 받았어요. 고종이 망국의 원흉처럼 가르치는 곳도 많았고. 사실 이게 일제가 심어놓은 식민사관 때문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덕수궁과 정동이 한국의 심장부였고 또 ‘석조전’을 외세침탈의 상징으로 여겼지만 대한제국의 첫 정전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대한제국역사관’으로 재탄생했습니다. 또 자동차에 막혀 쳐다만 보았던 환구단도 횡단보도를 건너 직접 찾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근대역사를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고 현실적으로 다시 연구하는 문화가 생겨났는데. 지금 덕수궁 근처도 변화가 많아지고 있어요. 미국 대사관 바로 옆에 선원전이라고 선왕의 어진을 모신 건물이 있었는데. 여기가 원래는 미국 대사관 땅이었지만 한국 시민단체들의 활동으로 그 터를 되찾을 수 있었고요. 얼마 전부터 보니까 계속 그곳에서 뭔가를 발굴하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이제 바로 덕수궁 선원전(璿源殿)과 미국대사관 관저 사이에 난 좁은 길인 '고종의 길'이 2년에 걸친 복원공사를 마치고 1일 시범 개방 형식으로 공개됐습니다. 8월 한 달간 시범적으로 공개된 뒤, 다시 10월에 정식 오픈된다는데요. 벌써부터 이 길을 걸어보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소 : 최근 나온 드라마를 보면 배우 이병헌 씨가 그곳에 있다고 봐야 하는 건가요?

▶이 : 사실 덕수궁 길을 많이 와보셨던 분들은 알겠지만 제가 처음 이곳 경향신문에 입사할 때만 해도 갈 수 없는 곳이 많았어요. 특히 미국 대사관 쪽은 경찰들이 상시 머무르면서 통행을 자주 막았는데 지금은 정말 개방적이 됐습니다.
특히 못 가던 길이 바로 덕수궁 서북쪽 구세군 서울제일교회 건너편과 옛 러시아공사관이 있는 정동공원을 잇는 좁은 길인데요. 광화문역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가면 ‘덕수 초등학교’가 있는데 여기 구세군교가 있고. 여기부터 정동공원 구 러시아 대사관이 있는 곳까지 막혀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그 좁은 길이 열렸습니다. 덕수궁 선원전 부지가 2011년 미국과 토지교환을 통해 우리나라 소유 토지가 되면서 그 경계에 석축과 담장을 쌓아 복원한 것입니다. 고종의 길 복원의 중심에는 선원전 터가 있습니다.
1920년 덕수궁이 축조되면서 건물이 사라지고 그 위엔 경기여고가 세워졌습니다. 그 후에 미 대사관이 경기여고 부지에 대사관 숙소를 짓겠다고 건축허가를 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고요. 그 후로 계속 미국의 압박이 있었지만 다행히 서울 시청 공무원이 제보를 해 전국적으로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국 시민단체가 모여 반대운동을 벌였습니다. 결국 미 대사관의 계획은 무산됐고, 2011년 한미정부 간 합의에 따라 우리나라 소유의 토지가 됐고, 이번에 ‘고종의 길’로 복원돼 개방된 것입니다.

▷소 : 조그만 길이면 사람이 몇 명 정도 지나갈 수 있는 길인가요?

▶이 : 오솔길 같은 좁은 길이에요. 작은 돌담길 사이에 생겼는데. 그런데 여기 가보면 ‘조선저축은행 중역 사택’도 세워져있고 옆에서는 문화재 발굴을 계속 하고 있어요. 그런데 여기가 구 러시아 대사관으로 이어지는 비밀 통로였다고 하는데요. 특히 고종이 아관파천을 하고 덕수궁으로 다시 옮겨올 때 이용했던 길이 바로 이 길이었다고 해요.

▷소 : 그때도 이렇게 좁은 길이었을까요?

▶이 : 아무래도 비밀 오솔길인만큼 좁은 길이었을 것으로 보여지고요. 지금은 미국 대사관 건물들이 있어 그걸 두고 발굴하고 있어서 그 사잇길만 개방한 건데. 앞으로는 건물을 철거하고 선원전 터를 다 발굴한 다음 다시 있던 건물을 복원해 개발한다고 해요. 사실 지금이 원래 있던 모습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소 : 볼 수 있는 기간이 8월 한 달 뿐인가요?

▶이 : 지금 8월 한 달은 철거 전의 모습을 볼 수 있고요. 다시 재개장하는 10월에는 발굴한 문화재를 함께 공개할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가보면 ‘조선저축은행 중역 사택’이 보이는데 1938년 만들어진 한옥과 일본식이 혼합된 건물이거든요. 지하1층 지상2층으로 되어 있는데 해방 이후에는 미군부대 숙소로 쓰였다고 하고요.
여기를 바깥에서 관람하고 경사진 길을 죽 오르면 담장 사이로 쭉 뻗은 '고종의 길'이 나타나는데 특별한 볼거리는 없어요. 하지만 이곳이 의미가 있는 건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던 당시 긴밀하게 이용됐던 길이고. 그리고 예전에 아관파천 때 덕수궁과 선원전, 중령전이 나뉘어졌는데 여기를 오가는 길이었습니다.
사실 덕수궁 정동이 유명했던 이유가 조선의 정신을 모셨던 곳이거든요. 왕의 초상 어진을 봉안한 선원전을 비롯해 왕이나 왕후의 시신을 모시는 빈전도 있었고요. 보고서에는 1919년에 고종이 승하하면서 모두 이전됐다고 하는데 그 전까지는 한 왕국의 중심지였던 거죠. 일제는 이걸 다 옮기고 고등학교를 건립했는데 지금은 그 100년 전의 모습을 되찾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소 : ‘아관파천’이라고 하는 게 러시아 공사관으로 고종이 거처를 옮긴 거죠.

▶이 : 맞아요.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나서 그 이듬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이동을 했는데. 사실 이 부분을 ‘도피’라고 보는 분들도 있지만. 당시 러시아 대사관에서 대한제국을 세울 계획을 가졌다고도 해요. 그때는 이 덕수궁도 ‘경운궁’으로 불렸었는데요. 이 경운궁을 정궁으로 삼으면서 대한제국을 선포했죠. 그때 고종이 이곳을 오가면서 많이 사용했던 길을 ‘고종의 길’이라고 보시면 되고요. 사실 이 건너편에 바로 ‘서울 역사 박물관’이 있는데 거기가 경희궁이거든요. 그곳으로 갈 때도 이 길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지금 "고종의 길은 미국공사관이 들어서면서 선원전 영역 사이에 담장을 쌓아 생긴 길"이라며 "덕수궁 각 영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길이었다"고 해요.

▷소 : 고종이 다시 나타나서 지금의 길을 걸으면 건물이 너무 많아져서 이 길이 그 길인지 헷갈릴 것도 같은데요.

▶이 : 네. 제가 들으니까 원래는 저 시청까지 덕수궁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일제가 그 사이를 나눠놔서 볼 수가 없는데. 지금 영국 대사관이 있는 동쪽 쪽 구간이 단절돼 있어요. 정밀한 고증을 통해 선원전 영역과 옛 모습을 복원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소 : 알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듣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경향신문 이윤정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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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