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M 스페셜] "작가 김명순 100년을 잠들다."

  • 입력 : 2018-01-30 16:29
  • 수정 : 2018-02-12 08:46
'미디어테러' '데이트 폭력' 김명순 재조명 통해 바라본 한국사회

kakaotalk_20180130_221123481 [오프닝] 일제강점기, 암울했던 우리 민족의 크고 아픈 상처와 역사.

그 속에서 등장한 '신여성'이라는 단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자 했던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교사로 문학가로 기자로 자신의 길을 걸어갔는데요.

그러한 여성들의 삶은 당시 도전이었고 어쩌면 그 도전은 불행의 신호탄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이름이 떠오르십니까?

오늘은 이 시간에는 나혜석과 함께 동시대 신여성으로 함께 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작가 김명순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봤습니다.

화려한 등단과 무려 100여편의 작품을 남겼지만 불운하게 사라져야만 했던... 피지 못한 꽃, '작가 김명순'

[오프닝] "김명순은 다른 나혜석이나 1910년대 등단한 여성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스캔들의 주인공으로만 기억이 되었고 이분들의 문학적 업적이나... 고적에 대해서는 완전히 매장돼 있었어요."

KFM 스페셜 "작가 김명순 100년을 잠들다."를 통해 암울했던 우리의 1900년대 문학계와 그녀의 삶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잠시 뒤에 뵙겠습니다.

[앵커] 1920년대, 작품 활동을 통해 저항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근대문학 1세대 여성 문인들의 삶은 그리 녹록치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KFM 스페셜 이번 시간에는 1900년대 초반으로 문학여행을 떠나볼까합니다.

2018년 경기방송이 준비한 특별한 시간인데요.

잊어서는 안 될 역사, 잊혀져서는 안 될 역사.

우리 근대 문화를 다시 되돌아보는 문화기행입니다.

오늘은 한국 최초 여류작가, 김명순에 대한 재조명을 통해서 과거와 지금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경기방송이 주목하는 인물은 바로 작가 김명순입니다.

그녀는 누구일까요? 오늘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나눠보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소중한 분들을 모였습니다.

문학평론가이자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부경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소장이신 송명희 교수님 모셨습니다.

문학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베스트셀러 장편소설 <미실>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김별아 작가 나오셨습니다.

[앵커] 먼저 지금까지 알려진 김명순 작가에 대한 기본적인 프로필이라고 해야 할까요? 오기자 (네 오인환입니다.) 먼저 김명순 작가의 간략한 소개를 좀 해주시죠.

[기자] 네. 김명순 작가는 1917년 월간종합지 청춘의 현상 작품 모집 응모에서 의문의 소녀로 입선했습니다.

당시에는 다소 생소한 여류작가로서 삶을 살아가게 되었는데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구요.

당시 문학계는 방정환이나 최남선, 이광수 등이 잘 알려져 있던 시대였습니다.

결국 여성들이 문학작품 활동을 한다는 것 조차도 상당히 주목을 끌 수 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는데요.

거기에 최남선과 이광수가 대표했던 국내 문학계에서 최남선이 주관했던 '청춘' 그리고 이광수가 심사를 봤다는 점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지상파 대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수상을 해 큰 주목을 받았던 것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앵커] 하나 하나 짚어보면서 이야기를 풀어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송명희 교수님. 김명순 작가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오셨는데요. 김명순 작가의 등장에 대해 당시에는 어떠한 평가가 있었습니까?

[앵커] 먼저 대표작으로 꼽이는 '의심의 소녀'라는 작품의 등장, 결정적인 팩트로 남아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있고 당시 문학과 비교 했을 때 어떠한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앵커] 그런데... 김별아 작가님. 김명순 작가에게는 여러 이름이 존재한다는데... 탄실인가요? 발표하신 작품 제목과도 일치하는데 어떤 이름들로 불렸습니까?

[앵커] 송 교수님,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명순 작가의 작품 활동의 가치를 100년이 지난 지금에서 어떻게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거든요. 순수 창작 행위를 했다... 이 작품들이 담고 있는 이야기가 여성에 대한 시대상 정도는 반영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이 부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앵커] 김별아 작가님 궁금한 것이 여성작가의 글쓰기와 남성작가의 글쓰기가 조금 다른 면도 분명히 있을 것 같긴 합니다. 어떤 부분에 차별성이 있을까요?

[앵커] 송 교수님, 그런데 왜 김명순 작가에 대한 조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던 것일까요? 작품도 수 십편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말이죠.

[앵커] 김별아 작가님께서는 김명순의 삶을 재구성해 이야기 하신 같은데요. 굴곡 많았던 그녀의 삶, 왜 비극적이었고 고통스럽다고 하신 건가요?

[앵커] 그러니까 시대적 배경에서 어쩌면 피해자 였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말씀도 하셨더라구요. "내가 문단활동을 한 현재도 당시와 상황은 다르지 않다.", "여성작가들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앵커] 송명희 교수님 결국 김명순 작가의 작품에 대한 가치를 재조명 하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게 됩니다.

아직까지 발굴되지 못한 작품들도 많을 것 같구요. 그녀의 행적 여러 부분에서 의문도 많습니다.

더 이상 시간이 지나면 이러한 것들을 아예 발굴하지 못할 가능성도 더 높아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연구자로써 어떤 부분에서 가장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앵커] 결국 현재까지도 깊게 조명 되지 못한 것은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문학계가 과연 김명순 작가의 재조명을 어떻게 바라볼지도 궁금합니다.

김별아 작가님은 여성 작가로써 이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기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앵커] 지금까지 김명순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좀 나눠보고 그의 삶이 어떠했구나... 그리고 그녀의 문학활동에 대한 가치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지난해 말 김명순 작가 등단 100주년을 기념해서 심포지엄이 국내에서는 처음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은데요. 오기자 (네 오인환입니다.)

그 부분에서 미디어 테러에 대한 주장도 제기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들이 논의됐습니까?

[기자] 네. 미디어 테러라는 주장이 지난달 말 열린 김명순 등단백주년 기념학술포럼에서 제기가 됐습니다.

서정자 초당대 명예교수 역시 김명순 작가에 대한 연구 부족에 대해 먼저 안타까움을 나타냈는데요.

서 교수는 인터뷰를 통해서 먼저 김명순 작가의 작품에 대한 가치에 대해서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들어보시죠. (인터뷰2)"작품 연구를 해보니까... 문학성이 높고 우리 현대 문학사 초기에 반드시 언급을 해야할 아주 중요한 작가라는 확신이 들게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재로써는 김명순 문학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하기에는 아직 멀었습니다. 그야말로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구요. 여러 자료를 구하는데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서 교수는 그러면서 당시 김명순 작가에게 이뤄졌던 당시 문학계의 공격을 이른바 미디어 테러로 규정하면서 비판의 목소리도 높였습니다.

(인터뷰3)"김명순은 오직 문학에서 승부를 보려고 생각을 했어요. 약혼을 앞두었던 남자로 부터 데이트 폭력을 당했고 이것이 매일신보에 낱낱이 보도가 되면서... 여성으로 치명적인 정조를 잃은 여자라는 주홍글씨를 달게되었습니다. 그래서 미디어 폭력이라고 생각했는데... 폭력을 넘어 테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명순이 여성 작가로 등단했다는 것에 대해서 남성 문인들이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공격의 타겟이 되고 김기진의 공개장을 받아든 김명순은 억울하기에 짝이 없던 것이죠."

[앵커] 100년 전 이뤄진 '미디어테러' 새로운 반론이기도 하고 주장에 대해서 어느 정도 납득이 충분히 가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결국 아쉬운 것은 이러한 1세대 연구자들의 연구가 후손들에게 이어질 수 있는가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구요? [기자] 네. 물론 현재까지 많은 작품이 연구자들의 땀방울을 통해 발굴이 됐습니다.

서 교수는 경기방송을 통해서 최근 새로운 소설 하나를 발굴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는데요.

학자 개인 개인이... 상당히 열악한 상황에서 이를 보존하고 연구하는 일이 국내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발굴될 문학들이 많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듯해 아쉬웠습니다.

여성가족부가 김명순을 여성인물로 언급은 하고 있습니다만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비판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제는 김명순 작가 등 여성작가에 대한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지원 그리고 나아가 근대문학사에 여성작가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새롭게 정립하는 것이... 아마 우리 후손들의 과제가 아닐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들어보시죠. (인터뷰4)"오늘날까지도 데이트폭력이라는 것이 최고의 탑뉴스가 될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에서도 미투 운동이 벌어지고 있잖아요. 100년이 지나봤자... 여성에 대한 의식은 아직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언이자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문학사에서는 여성작가가 아예 등장을 못해요. 문학사에서 언급을 안해줘요. 김명순이 100년이 지나서 우리 앞에 얼굴을 드러낸 것 처럼 다시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앵커] 앞서 서정자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만... 미디어 테러로 규정을 하시고 계신데요.

최근 혐오라는 단어가 대두되면서 우리사회에는 과제로 남아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송명희 교수님께서는 김명순 작가의 재조명이 2018년 우리사회에 어떠한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고 보십니까?

[앵커] 김별아 작가님도 소설을 통해 이야기를 하셨구요. 김명순 작가에 대한 재조명 청취자 분들에게 어떠한 의미로 어떠한 느낌으로 다가오실지 궁굼하기도 한데요. 김별아 작가님은 앞으로 김명순 작가의 재조명, 우리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앵커] 18세기를 살아왔던 여성 작가들의 삶을 통해서 지금을 이야기 하고 우리가 잊혀지고 잘못된 역사는 다시한번 재평가하고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긴 시간 함께 해주셨는데요. 송명희 교수님께서는 학자로써 김명순 작가에 대한 재조명에 대해 어떠한 바람을 가지고 계신지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주시죠.

[앵커] 김별아 작가님도 오늘 시간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김명순 작가에 대한 재조명의 신호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해봅니다. 김별아 작가님도 마무리를 좀 해주시죠.

[앵커] 어쩌면 1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참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오기자 (네) 앞으로 어떤 부분을 좀 취재해보실 예정인가요?

[기자] 네. 여성가족부 자료를 뒤져보면... 김명순 작가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는 있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경기방송은 재조명을 넘어서 국내 문학사에서 김명순 작가에 대한 사라진 흔적,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는 확실히 정리를 하고 갈 필요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즉 정부발 복원 프로젝트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사실 1970~80년 대를 기점으로 사실상 김명순 작가에 대한 흔적을 찾는 일은 큰 진전을 이루진 못했습니다.

아직까지도 그녀의 죽음에 대한 부분도 정확히 알려진 내용은 없어서 이러한 부분을 중심으로 취재를 이어가 볼 예정이구요.

많은 학자들의 자문을 통해서 도출된 과제를 하나 하나 풀어보는 작업을 할 예정입니다.

조만간 김명순 작가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방송할 예정입니다.

이와 관련해 많은 관심과 이에 대한 제보까지도 부탁을 드립니다.

[앵커] 1920년 대를 대표하는 한국의 여류시인이자 소설가.... 탄실. 망양초, 망양생... 그녀를 다시 한번 불러봤습니다.

김명순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작품에 대한 가치... 또 그리고 최초 여류 문인으로써의 인정 보다는 왜 양성평등이나 여성의 해방, 그리고 미디어 테러라는 다양한 사회주제들이 머리에먼저 떠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녀가 그녀의 작품, 그녀의 삶이 완벽하게 복원되진 못할 진 모르겠지만 당시 시대상을 담고 있다는 것은 부연하지 못하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KFM 스페셜 최초의 여성 소설가 "김명순 100년을 잠들다"

오늘은 김명순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송명희 부경대학교 교수, 김별아 작가, 오인환 기자와 나눠봤습니다.

KFM 스페셜은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노광준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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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