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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쨰 사연을 남깁니다. (석용올림)
  • 2019.11.12 05:29
  • 작성자 : 스쳐가는 그리움의 발자국(송석용,1641)
  • 조회수 : 64

안녕하세요 3번쨰사연을 짧게나마 남깁니다.

21살 학생시절,

공장에서 아르바이트 하면서 한 사람을 좋아하는 첫 감정이자 첫사랑으로 그녀를 만났지만~

국적이 다르기에, 병역의 의무를 져야했기에, 헤어지게 된 그녀입니다. .

한번쯤 멀리서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이 운이 따라주어서인지 중국출장가게 되었고,

휴가까지 보태서 천진에 살고 있는 그녀를 멀리서 보는 마음의 심정으로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 내가 군대 들어가기전, 그녀가 떠나기 전에 그녀와 했었던 약속같은 말이 생각났습니다.

지금은 비록 학생의 신분이지만 어디에 있든 끝까지 차장가서 함께 할거라는, 직장 구할때까지만이라도 기다려 달라는 약속.

그 약속을 할정도로 너무나도 사랑했고 변치않을 마음의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그녀가 모국으로 떠난 것에 대한 배신감이 커서인지~

다시 만나기전까지 까먹고 있었습니다

그 약속을 잊지만 않았어도~

후회가 없었을텐데~ 


군대시절, 그녀와 헤어지고나서 빙하처럼 얼어버린 마음을 녹이는시간은 너무 늦은걸까요?

항상 내 마음의 표현은 항상 늦은 걸음이가봅니다.


결국 천진에 있는 그녀와의 만남은 우연찬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중국어를 전부는 몰라서 통역사를 쓰면서 찾다보니 시간이 걸리다 걸리고 찾은 그녀의 집

그리고 멀리서 잘사는지 지켜 보고 싶은 마음에

그녀의 집앞에서 거리를 두어야겠다는 심정으로~

뒤를 돌아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그녀와 남자 한분(남동생) 눈에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직접 만나고보니 조그만한 미소를 보내는 그녀에게 나는 머라고 말을 하면서 꺼내야할지 몰랐습니다.

그토록 보고 싶었는데 막상 만나고보니 입에서 말이 안 떨어지더군요

그걸 눈치채고 아는지 먼저 나에게 잘 지냈어요?라는 그녀의 어설픈 한국말에

어~ 라는 말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모습은 많이 초췌한 모습처럼 보였고, 

그녀가 직접 털로만든 털모자를 머리카락 감춘듯 푹 눌러쓰고 있었습니다.

한국 떠나고 그 동안 살아온 생활과 자신의 모습은 왜 그렇게변한건지 이야기를 듣고나서

나는 가슴이 목이 메일정도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녀는 많이 아픕니다.


통역사로 통해서 그녀의 친동생에게 들은 말로는

어린 시절부터 공장에서만 일해서인지, 중국으로 돌아오고나서 그녀는 기침을 자주했다고 합니다.

큰 마음먹고 병원을들렸는데, 페암말기에 여러군데 암이 번졌다고 합니다.

수술과 방사선치료단계는 느젔다고 ~

너무 번져서 힘들다고~

마음의 준비 하시라고~

그 말에 하루종일 울었다고 동생이 말로 전해주었습니다. 


애써 약으로써 항암치료받고 있다고~

하지만 약도 독해서인지, 암때문인지,

이미 점점 빠지고 있는 머리카락수를 감추고 싶어 늦겨울. 봄이 오는 시기에 지금은 털모자를 푹쓰고 다닌다고 합니다

저하고는 몇일간 만났고 지냈는데도 모자를 안벗었습니다.

 내가 도와줄수 없을만큼 아픈데도 나에게 애써 웃는 모습은 내 심장에 콱 박혔습니다

그리고 약속.

내가 찾아 올거라는 그 약속을 믿고 4년을 넘게 기다려주고 있었습니다.

그 한마디를 믿고 기다려준 그녀.

늦은 걸음이지만 만나게 되었습니다.

휴가까지 내서 만나는 시간 몇일간 머물기로 했기에 통역사는 먼저 귀국했습니다.

그녀가 있기에 한국어로 대화가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머리빠진모습과 초췌한얼굴로 보이기가 싫은건지~

저를 만날때면은 짙은 화장을하고 모자 푹쓰고 그런 모습을 보면  

저에게는 더 아픔이 느껴져 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귀국 하기전에 그녀를 데려오지도 데려오겠다는 약속을 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녀의 마지막소원이 자기부모님 옆에서 묻히는거라고 합니다 .


맏이 장녀로써 나중에는 돌아가신 자기부모님에게~

나 이렇게 어린동생들을 든든하게 키우고 지켰냈다고~

마지막은 부모님무덤 옆에서 묻혀서 말하고 싶다고 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이야기를 계속 나누다가 왜 이렇게 늦게왔는지 나에게 원망도 해보고,

제 어깨에 기대며 조금이라도 더 오래살고 싶다고,

또한 엄마,아빠가 자꾸 보고싶다고 울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친동생들도 이 말을 건네주었습니다.

그녀나이 15세때에 부모님을 사고로 멀리보내고 어린동생들을 먹여살려야하기에 공장에 취직했다고,

그리고 중국으로 오면서 혼인이야기를 다 물리치고 나를 계속 기다렸다고~ 

올거라는 약속을 믿었기에~


나는 진짜 그녀가 기다려줄 주는 몰랐습니다. (나 참  나쁜 사람이죠)


그녀하고 귀국전 이별시간 다가올 때 마지막으로 꺼낸 말이 있습니다.

( 이제는 진짜 헤어져야한다고~) 이별인사까지 저에게 건넸습니다.

( 이렇게 헤어지는 마지막 인사를 그나마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말을 건네 줍니다.


그녀에게 한국으로 데려와 치료받게 하고 싶었지만,

이미 암세포가 많이 퍼져서 자신은 늦었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는지,

마지막 모습은 부모님 옆에 묻히고 싶었나 봅니다.


그리고 마지막을 암떄문에 힘든 모습으로 떠나가는 걸 보여주고 싶지 않고 싶었나 생각도 들었습니다.


비행기타기전 그녀의 마지막 손인사와 모습.

(잘가)라는 얼굴의 미소처럼.

(안녕.)아라는 얼굴의 표정


나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자책을 했습니다.

좀 더 빨리 마음의 녹아서 빨리 데려와서 치료도 받게 했어야 했는데~

자책 속에서 마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니 비행기 안에서 울었을지도 모릅니다.

내 맘속에 자책처럼 바보 단어를 자꾸 말했던 것도 생각됩니다.


그러나 귀국해도

인터넷이 발달되서인지~

그녀와 메일을주고 받고, 국제 전화도 자주했습니다.


그녀의 소식이라도, 목소리를 한번이라도 더 듣고 싶은 제 마음~

그런데, 언제쯤인가 메일이 끊겼고 전화도 안받는 그때, 한 통의 소포가 날라 왔습니다.


그 소포안에는

여러가지 물품들과

그리고 나를 기다리면서 실로 짠 쪼끼,

실로만든 털 목도리,

그녀가 남긴 메모식 일기장,

한장의 중국어 글씨종이


중국어로 된 그 내용은 친남동생이 적어준 종이입니다 


번역해보니

남동생이 적어준 그 종이에는,

(( 20살때인 누나가 한국에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떠나기전까지도 사랑을 했었던~ 그 분에게 전해드립니다. ))  



한국에서 배운 어설픈 뜨게질솜씨로 중국에서 짠 실 목도리와 여러가지 물품. 그리고 눈에 띠는 그녀의 메모식 일기장.

그 유품을 받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충격에 잠시 일을 그만두고 오랫동안 바다를 바라보며 아파했고 방탄하게 술만 찾았던 추억들이 생각납니다.


그녀는 벚꽃을 너무 좋아했습니다.

머리감을때 샴푸. 린스로 감은 후  벛꽃이 담겨져 달인 물에 머리를 감은거라고 합니다.(그녀가 남긴 메모식 일기장에서 남겨져 있네요)

벚꽃이라면 그녀가 떠올릴정도로 생각납니다.

그래서 지금도 벚꽃이 피는 시기쯤에, 그녀의 행동,모습,말투,애교 같이 먹던 음식,군것질, 영화,자전거,공원,버스,편의점  등등생각납니다.


가슴 속에서 제나이 21살, 그녀는 (20살)에 시작한 나의 첫사랑을

지금까지 그녀를 내 마음 속에서  담을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첫사랑이었던 그녀는 떠났습니다. (그때, 나의 바보 같은 마음때문입니다)


처음에 쓰던 경기방송 닉네임이 (벚꽃이 그리움에 지다) 입니다

지금은

( 스쳐가는 그리움의 발자국 )으로 남기고있습니다

왜  내가 10년 넘게 그녀를 잊을 수가 없는지~

이 추억은 가슴에 콱 박혀버렸습니다.


일기장 뒤편에~

이 말리 있더군요

( 사랑해줘서 고마워요. )

헤어져야 하기에 앞으로는 미련 갖지말라고, 나에게 전해주지 못한 자기 마음을~

혼자서 일기장에 적은 표현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슬픈언약식 ~ 김정민

그대는 어디에 ~ 임재범

이별을 걷는다 ~ 모던쥬스

너무 아픈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김광석버전, 박새별버전, 김필버전

한숨 ~ 이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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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용님!
    "왜 내가 10년 넘게 그녀를 잊을 수가 없는지" 라고 하셨는데
    아마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잊으려 하지 마시고 고이 잘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아쉽고 슬픈사연 이지만
    그녀에 대한 자책으로 자신의 삶을 훼손해서는 안됩니다.석용님은 더 즐겁고 더 활기차게 살아가셔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 그분은 석용씨가 자신으로 인해 슬퍼하기 보다 석용씨가 더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고 있을 겁니다.
    어려운 사연 감사드리고 힘내셔요!

  • 그분 하늘 어디선가 아프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고 믿어요. 힘내세요



2019.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