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인] 장덕호 실학박물관장

  • 입력 : 2017-10-16 09:06
  • 수정 : 2017-10-16 09:23
  • 10월 14일 포커스인(장덕호 실학박물관장).mp3
다양한 컨텐츠 개발해 재미있는 박물관으로 거듭나고파

장덕호 실학박물관장

[앵커] 조선후기 들어서면서 개혁적이고 현실지상적인 학문이 태동하기 시작합니다.

실사구시의 학문이라고도 하는 실학.

크게 정약용 선생으로 대변되기도 합니다만 이 실학이 태동한 곳이 경기도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생가 옆에 실학박물관이 들어선 이유이기도 할텐데요.

오늘은 실학, 그리고 실학 박물관에 대한 얘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장덕호 실학박물관장 만납니다. 안녕하십니까?

[장 관장] 안녕하세요.

[앵커] 실학 박물관, 이름만 들어도 뚜렷합니다만, 정확하게 어떤 곳입니까?

[장 관장] 실학이라고 하면 도대체 무슨 개념일까 하는 이야기부터가 조금 돼야할 것 같아요.

실학이란 말은 실사구시학으로 추사 선생님이 많이 쓰셨는데 실사구시학의 줄임말로 보면 돼요.

조선 후기에 이 말이 생겨난 것은 아니고요.

중국 고전에서부터 나오다가 청나라 때 고증학이 발달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용을 하면서 우리나라에서 활용이 됐던 말인데요.

실학이 발생하게 된 배경은 조선에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생기고 난 다음에 국토가 황폐화되고 그러면서 개혁적인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국민들을 조금 더 잘 살게 할 것인가 이러한 개혁적인 사상들을 가지신 분들이 반계 유형원 선생님이라든가 성호 이익 선생, 말씀하셨듯이 다산 정약용 선생님 이런 분들이 나타나셔 가지고 국민들을 어떻게 하면 잘 살게 할 것인가 그런 문제들을 고민을 하시게 되죠.

그래서 이것들에 대해서 개혁사상들 이런 것들을 집대성하기 시작합니다.

실학이 그래서 발생을 하게 된 것입니다.

[앵커] 사실 실학이라고 하는 것을 학교 다니면서 배우긴 배웠습니다.

실제로 실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모르긴 했고요.

최근에 보니까 저희 때는 안그랬습니다만 학교 그리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학박물관의 움직임이 있더라고요.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아이들하고.

[장 관장] 일단은 실학자들이 어떻게 공부를 했는가를 살펴볼 수가 있죠.

이 실학자들은 특히 다산 선생님 같은 경우도 그렇게 하셨어요.

자식들한테 기왕의 공부를 할 것 같으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공부를 해봐라.

닭을 키웠었는데 그냥 맹목적으로 닭을 키우지 말고 닭을 어떻게 키웠는지 다 적어라. 그래서 그것을 닭계 자, 계경 이렇게 붙여도 되고, 담배를 농사를 지으면 연경, 공부를 해서 이것을 집대성을 해라, 그래서 백과사전을 만드는 겁니다.

학생들에게 우리가 그런 이야기들을 해주죠.

지금 자라나고 있는 많은 풀들이 있는데 이 풀들은 무엇인데 어떻게 자라고 이런 것들을 실학적인 관찰법들도 가르쳐줄 수도 있는 거고, 또 어떻게 이것을 순서대로 키워나가야 되고 이러한 방법들도 알려주는 거죠.

그래서 조금 더 우리가 쉽게 보고 지나칠 수 있는 부분들을 관찰하고 종합적으로 해서 이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 나가는 그런 공부들도 시킬 수가 있습니다.

[앵커] 어제 오늘해서 반계와 관련해서 학술대회를 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내용입니까?

[장 관장] 흔히 우리 실학 연구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반계 선생님을 실학의 비조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실학을 처음으로, 실학처럼 공부를 하셨던 분이겠죠.

반계 선생님의 그동안에 연구가 집대성되진 못했었어요.

그리고 반계 선생님이 남기신 유명한 문집이 반계수록이라고 있습니다.

그것만 그동안 발견이 돼서 변역도 하고 그것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었는데, 3년 전 쯤에 후손이 갖고 있는 반계잡록하고 반계일록이라는 것을 저희가 발굴을 했어요.

그래서 그것을 그때부터 시작을 해서 성균관대학의 임영택 교수님과 같이 작업을 해서 번역하고 주석을 달고 해서 사실은 올해 전반기에 책이 나와줬어야 하는데 조금 늦었습니다.

그래서 11월 달에 책이 나올 것이고 연구를 조금 더 확산시키기 위해서 베트남, 일본, 중국 학자들도 모시고 한 30 여 명 정도가 발표를 하고 아주 심도깊은 연구성과를 나타냈습니다.

[앵커] 홈페이지를 조금 봤는데요.

"홍대용 2017 경계없는 사유", 기획전시에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실학박물관에서 쉽게 풀었을 것 아니겠습니까? "홍대용 2017 경계없는 사유"

[장 관장] 홍대용 선생님 같은 경우는 조금 이른 시기의 실학자라고 보시면 됩니다.

과학사상가인데, 중국연행을 통해서 한중문화의 물꼬를 튼 분이에요.

우리가 연행하면 빨리 떠오르시는 분이 박지원 선생이에요.

이 분보다 20 여 년 이상 빨리 가서 중국학자들과 교류를 해서 한국에 이런 학자들이 있다는 것을 다 알려주신 분이에요.

그리고 동양에서 처음으로 지구 자전설을 말씀하세요.

혼자서 천체를 연구하고 이런 것을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예술하시는 분들 몇분하고 한 1년 전부터 홍대용 선생님이 걸었던 길도 같이 연행도 해보고 계속 워크숍을 했습니다.

홍대용 선생님의 사상에 대한 얘기도 많이 하고 국제 워크숍에 같이 가서 이야기들도 쭉 듣고 해서 이분들이 홍대용 선생님의 팬이 됐어요.

미디어 작가, 음향 작가, 다큐멘터리 작가 이런 분들이 정말 홍대용 선생님의 작품을 현대 작품으로, 사상을 작품으로 만들어주신 거죠.

[앵커] 그럼 지금 실학박물관에서 하고 있는 홍대용 선생 관련 기획 전시는 다양하겠네요.

그냥 책들이 있는 게 아니네요.

그렇죠. 혹시 조금 오해하시면 백남준 아트센터에 가있지 않은가 하는...

[앵커] 한번 저도 찾아 가봐야 하겠습니다.

사실 위치가 다산 유적지 옆에 있지 않습니까?

바로 생가 옆에 있는 거죠?

특별하게 거기에 설립한 이유가 있을까요 실학박물관을?

[장 관장] 경기도에서 실학이 태동할 수 있었던 것도, 실학의 태동지가 한강 주변입니다.

지금 다산 유적지를 둘러싼, 지금은 팔당호가 생겨가지고 수면이 굉장히 높아졌는데, 예전에는 쉽게 광주 분원과 지금 다산 선생님이 태어나고 자라셨던 마재 마을과 쉽게 건너고 할 수 있었어요.

그 주변에 그런 학자들이 굉장히 많이 사셨어요.

다산 선생님도 한강에서 받은 영향이 굉장히 컸던 부분들이 있고, 우리나라에서 실학 집대성자 하면 어쨌든 다산 선생님이십니다.

마침 또 거기에 세울 수 있는 부지도 있었고, 또 실학 박물관이 위치해야 하는 당면성은 당연히 있었기 때문에 그 옆에 있었고, 또 2012년도에 다산 선생님이 세계 문화인물로 선정이 되십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인물.. 그때 같이 선정되신 분이 서양에 우리가 잘 아는 "장자크 루소"라든가 그런 분들이 같이 선정이 되셨어요 2012년도에.

유네스코 문화인물로 지정됨과 동시에 남양주에서 그 지역을 생태문화공원으로 만들었어요.

그러다보니까 다산 유적지조차도 굉장히 유적지로서의 역할도 많이 하게 되고, 또 좋은 풍광도 많이 살리게 되고, 역시 실학박물관이 거기에 같이 있음으로 해서 많은 덕을 보고 있습니다.

[앵커]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청렴에 대한 것을 주도해가시고 계신 것 같더라고요 실학박물관에서.

[장 관장] 다산 선생님은 청렴을 굉장히 많이 말씀하셨어요 목민심서에서.

그래서 저희가 다산 공렴 아카데미라는 것을 한 4년 전부터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공직자가 청렴해야 한다는 말씀을 목민심서에서 굉장히 많이 말씀을 하시고 주장을 하셨거든요.

다산 선생님이 사시던 때에는 결국은 지방 관리들이 굉장히 많이 부패되어 있었기 때문에 부패된 것에 대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백성들이었단 말이죠.

다산 선생님이 직접 목민관도 하셨고, 당신이 겪었던 부분들을 굉장히 정리를 잘 하셨어요. 목민심서라는 책을 만드셨는데, 이 책에서 지금 우리나라가 처해있는 공직자들의 정화라고 할까요?

그런 것을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목민심서랑 비교를 해서.

그러던 차에 경기도 감사관실하고 이것을 한번 해보자 경기도에 있는 공직자들부터 먼저 해보자 그래서 공직자들이 지켜야 될 윤리, 도덕 그런 것을 그냥 우리가 흔히 아는 청렴교육, 부패방지교육 이렇게 하면 재미 없습니다.

실학박물관에 오셔서 다산선생님은 어떻게 했고 다산선생님은 이렇게 하셨고, 또 다산선생님이 직접 생활했던 터전을 둘러보면서 같이하니까 굉장히 인기가 좋아진 거에요.

3년 만에 공직자들, 기업인들 대상으로 해서 만 명이 넘었습니다.

박물관에서 하는 교육프로그램 중에 성인을 대상으로 해서 일 년에 3천명 이상씩 오는 프로그램은 없습니다.

저희가 그런 계획을 갖고 있어요.

3청. 청렴인데 공직자는 공렴이고, 기업인들은 요즘은 돈은 잘 벌어야한다고 하지만 청부죠, 투명하게 돈을 벌어야 되는, 그리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마음이 맑아야 해서 3청.

청렴, 청부, 청심 이 3청 프로그램을 내년부터는 조금 더 공렴 프로그램을 조금 더 늘려가지고 할 그런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앵커] 지금 기획전시도 하시죠, 아카데미도 운영하시죠, 학생들 교육관리하시잖아요.

여기에 연구 학술작업, 연구학술도 예술작업까지 같이 가미하시니까 안하시는 게 없네요.

[장 관장] 요즘 박물관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고전적인 박물관은 수집가들이 좋은 예술품들 수집해서 과시하기 위해서 전시해놓고 보여줬던 고전적인 박물관이 우리나라에는 꽤 오랫동안 지속이 되어 왔죠.

우리 어렸을 때 박물관가면 조용히 해라, 설명도 거의 없이 쭉 돌아보고 나오고, 그러다보니까 박물관을 잘 안 갑니다.

아이들은 한번 갔다 오면 어릴 때 아주 질리죠.

그 어두운데 가서 아이들은 원래 뛰어 놀아야하는 게 정상인데.

[앵커] 앞으로 실학박물관 어떻게 꾸려 가실 지 듣는 것으로 오늘 만남 정리를 해야될 것 같은데요.

[장 관장] 실학박물관의 심볼은 보셔서 아실지 모르겟습니다만 하늘과 땅 사이에 수레바퀴가 있는 모습입니다.

하늘, 땅, 수레바퀴에 열쇠가 하나 꽂혀 있습니다 수레바퀴가 빠지지 말라고.

그런 형상을 하고 있는데, 수레바퀴는 18세기 실학이 추구한 생산과 문명의식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실학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서 미래를 열어가고자 하는 실학박물관 건립 취지를 담고 있는데요.

실학이 살아 숨 쉬고 실학자들의 삶과 실사구시의 정신을 직접 만날 수 있는 박물관으로 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을 하려고 해요.

4가지 정도의 제가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크게 지역의 문화복합공간으로서 허브의 역할을 조금 해야 된다 그래서 단순히 전시, 교육 이런 것도 하지만 여기에 공연, 지역민들이 언제든지 와서 찾아서 즐겁게 할 수 있는, 다 대여도 할 수 있고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으로 만들어보고 싶고요.

두번째 저희가 위치해있는 공간이 굉장히 경관이 좋다 보니까 지역에 예술인들이 많이 사셔요.

그분들하고 같이 콜라보할 수 있는 그런 것도 계획을 하고 있고, 실제로 지금도 교육프로그램에 그런 분들이 많이 오셔가지고 직접 해주십니다.

그렇게 하고 있고 또 세번째, 실학 전문 연구기관으로서 지역이라든가 다른 유관기관들과 협력해서 실학 전문기관으로 거듭날 생각을 갖고 있고, 마지막으로는 보다 좀 다양한 콘텐츠들을 개발하고 재밌는 프로그램으로 해서 박물관은 공부하러 가는 곳이 아니라 놀러가서 배우는 그런 곳으로 바꾸고 싶습니다.

[앵커] 제가 한번 찾아가겠습니다.

과연 실학박물관이 백남준 아트센터만큼이나 스펙터클한지 한 번 점검하겠습니다.

[장 관장]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앵커] 지금까지 장덕호 실학박물관장과 함께 했습니다.

[장 관장] 네 감사합니다.

[앵커] 포커스인 진행에 문영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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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9